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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광장

무명용사를 위하여

  • 작성자김명환
  • 등록일2018.12.02
  • 조회수822

구로승무 지영근 동지가 아프다.

철도노동운동사 만화로 보는 철도이야기작업을 함께했던 동지들이, 한 달 걸러 한 번씩은 만났는데, 지난달엔 모임을 걸렀다. 이달 말 퇴직이니, 철도 작업복을 벗기 전에 꼭 만나야 할 거 같다.


철도를 그만두기 전에, 그동안의 문예선전활동을 정리하고 싶었다. 30년 넘게 만들었던 삐라들 속에서, 실명으로 차명으로 익명으로 썼던 글들을 다시 불러냈다.


그게 뭐라고 정리해.”

지영근 동지가 말했다.

삐라로 엮은 삐라 하나 만들려고.”

난 말이지,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무명용사의 비있지? 역사는 영웅이 만드는 게 아니라, 이름 없이 죽어 간 전사들이 만드는 게 아닐까. 꽃다발도 무덤도 없이 사라져간 전사들의 꿈이 만드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그냥 그렇게 사라지더라도, 어느 한 순간,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쟁했다면, 난 그걸로 됐어.”

무명용사는 그냥 그렇게 사라지지만, 삐라쟁이는 삐라를 남기고 사라지거든.”

그나 나나, 사라져야 할 때가 됐다. 그는 그냥 그렇게 사라지고, 나는 내 마지막 삐라를 남기고 사라진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2000년 초봄이다.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철도노조 간부들과 싸우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간부들이 독점하고 있던 임원선출권을 조합원들에게 달라고 요구했다. 조합원들은 테러와 구속과 해고와 전출에 굴하지 않고 투쟁했다. 그 와중에 구로승무지부 동지들이 지부장을 직접 선출하는 쾌거를 감행했다. ‘철도노조 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투본) 기관지 바꿔야 산다편집장이었던 나는 그를 인터뷰했다.


이응천 알아요?”

인터뷰하는 건 난데, 그가 먼저 물었다.

응천이!”

반가운 옛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두환 군사정권 초기, “노동야학 조직사건으로 고생한 친구다.


지영근 동지는 같은 사건으로 감옥에 다녀왔다. 감옥에서 나온 그는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철도에 들어왔다. 지난해 송년회에서 만난 이응천이 시 쓰는 내 친구 김명환도 철도에 다닌다고 했단다. 친구의 친구니 친구 아닌가. 같은 승무선에서 일하는 동료이자, 같은 조합에서 운동을 하는 동지이자, 친구이기도 하니 이런 인연이 또 있겠는가.


그날의 만남 이후 그와 나는 철도노조 민주화투쟁, 철도민영화 반대투쟁을 함께했다. 그 사이 우리의 몸과 마음은 많이 상했지만, 우리는 운동을 청산하지 않고 끈질기게 싸웠다. 우리는 전선에서 늙었다.


구로승무 지영근 동지가 아프다.

혼신을 다해 지켜온 철도를 떠나려니 아픈가보다. 혼신을 다해 싸우다가 상한 몸과 마음이 여기저기서 덧나고 있나보다. 동료가, 동지가, 친구가 아프니 글쟁이가 할 수 있는 일이 글밖에 더 있겠는가. ‘어느 무명용사에게 드리는 글을 미리 써본다.


무명용사가 전선을 떠난다. 떠나봤자 얼마나 멀리 가겠는가. 단 한 번이라도, 진정으로 혁명을 꿈꿨던 전사는 전선을 벗어나지 못한다. 무명용사는 사라지지만 그의 넋은 전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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