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확인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 확인

조합원광장

투사회보

  • 작성자김명환
  • 등록일2019.05.17
  • 조회수572

1980527일 새벽 1, 박용준은 투사회보제작을 중단했다. 계엄군이 광주시내로 진입 중이라는 급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계획대로 여성 동지들을 피신시켜야 했다. 투사회보제작팀을 소집했다.


519일부터 광천동 들불야학에서 유인물 작업을 시작했다. 호소문, 선언문, 궐기문 등 세 종류의 유인물이 먼저 나갔다. 계엄군을 몰아낸 21일부터 투사회보제호를 달았다. 24일부터 작업실을 대의동 YWCA 2층 양서조합 사무실로 옮겼다. 시민항쟁지도부가 들어선 26일치 제9호부터 민주시민회보로 제호를 바꿨다. 27일치 제10호는 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9일 동안 박용준은 잠을 잔 기억이 없다. 등사기에, 필경을 한 원지를, 그 밑에, 16절지를 넣고 가리방을 긁었다. 원지 필경을 세 번, 네 번, 어떤 때는 스무 번을 했다. 손가락이 부르트고 손목은 퉁퉁 부었다.


519, 총을 비껴 메고 곤봉을 든 계엄군이 광주YWCA신협으로 들어왔다. 계엄군은 신협 교도계장 박용준의 소지품을 검사했다. 양서조합 직원 황일봉을 연행하려다가 이를 말리는 신협 실무책임자인 참사 김영철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건너편 무등고시학원 학원생들이 야유를 보냈다. 계엄군들이 무등고시학원으로 몰려갔다. 곤봉을 휘둘렀다. 군화발로 차고 짓밟았다. 피투성이가 된 학원생들을 트럭에 실었다. 박용준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있었다.


, 용준아! 빨리 와라.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윤상원에게 전화가 왔다.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들불야학 일반사회 강학이 된 윤상원은 박용준의 방에서 함께 살았다. 박용준은 광천동 시민아파트 김영철의 집에 살고 있었다. 윤상원의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73, 숭의실업고등학교 야간부 1학년이었던 박용준은 광주영신원 서경자 원장의 추천으로 광주YWCA신협 교도직으로 일하게 됐다. 광주영신원은 박용준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박용준은 조합원 방문교육, 물품배달과 수금을 담당했다.


787, 김영철이 광주YWCA신협 실무책임자인 참사로 부임했다. 광주영신원에 이어 광주YWCA신협에서, 박용준은 김영철을 다시 만났다. 김영철은 신협 소파에서 자고, 연탄난로에 라면을 끓여먹으며 생활하던 박용준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박용준은 김영철과 의형제를 맺었다.


그즈음, 광천동 천주교회에서 들불야학이 시작되었다. 김영철은 생활강학으로 참여해 시사와 레크리에이션 등을 가르쳤다. 박용준도 특별강학이 되어 대화법 등을 가르쳤다. 글씨를 잘 쓰는 박용준은 교재와 소식지를 만들었다. 박용준은 윤상원이 자신을 급하게 부르는 이유를 직감했다. 박용준은 광천동 들불야학으로 달려갔다.


이것이 웬 말입니까? 웬 날벼락입니까? 죄 없는 학생들을 총칼로 찔러죽이고, 몽둥이로 두들겨 트럭에 실어가며, 부녀자를 백주에 발가벗겨 총칼로 찌르는 놈들이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이제 우리가 살 길은 전 시민이 하나로 뭉쳐 청년학생들을 보호하고, 유신 잔당과 극악무도한 살인마 전두환 일파와 공수특전단 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쳐부수는 길뿐입니다. 520일 정오부터 계속해서 광주 금남로로 총집결합시다!


박용준은 윤상원이 건네준 호소문을 원지에 철필로 썼다. 손이 떨려 필경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가슴이 떨리고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시작한 유인물 작업이 9일째다.


형님! 지금 시민들이 총을 들고 싸우면서 피를 흘리고 있는데 이따위 유인물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우리도 나가서 싸우든지 해야 될 게 아닙니까?”

21일 오전, 궐기문을 배포하러 나갔던 서대석이 들어오자마자 울분을 터뜨렸다. 모두 일손을 멈췄다. 서대석의 말대로 시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게 무슨 한가한 놀음이냐 싶었다.


너 지금 혼자 시내로 뛰어가, 분노 하나로, 시민들을 조직하고 통제할 수 있어? 시민들의 투쟁을 조직하고 통제하면서, 그 투쟁을 한 차원 높이기 위해, 우리가 지금 이 고생을 하는 거야. 저놈들은 지금, 총을 든 한 사람보다, 천 사람이 총을 들게 만드는, 한 장의 유인물을, 더 무서워한단 말이다. 이 자식아!”


윤상원이 화내는 걸 그날 처음 봤다. 들불야학 식구들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총을 든 한 사람보다, 천 사람이 총을 들게 만드는, 한 장의 유인물! 운명과도 같은 그 한 마디가 항쟁기간 내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심장처럼 박동했다.



- 이 글의 전문은 자율평론56호에 실렸습니다.

http://daziwon.com/?page_id=474&category1=%EA%B9%80%EB%AA%85%ED%99%98%EC%9D%98+%EC%82%90%EB%9D%BC%EC%9D%98+%EC%B6%94%EC%96%B5&mod=document&pageid=1&uid=1688

댓글2

    비밀글 의견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