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확인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 확인

조합원광장

숨바꼭질

  • 작성자백남희
  • 등록일2019.07.02
  • 조회수1,701

숨바꼭질

 

 

다들 아시죠. 술래잡기. 숨바꼭질이라고도 하지요. 어릴 때 많이 해보셨을 텐데요. 요즘 열차에서도 한창 유행입니다. 눈에 불을 켜도 열에 일곱 여덟은 놓치고 있어 승률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얼마 전 검표 때의 일입니다. 슬그머니 뒷걸음질하는 승객이 레이더에 잡혔습니다. 즉각 어벤져스급 승무원의 촉감이 작동했고요. 바로 정당한 승차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무표 확률 90%.

다음 객실 통로에서 친구인 듯 또 다른 승객과 대화하는 장면이 잡혔습니다. 이때는 문제의 승객 표를 바로 확인해서는 안 됩니다. 왜 나만 검사 하냐며 짜증을 내거든요.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지만, 큰소리에 한 없이 작아지는 철도공사 아닙니까? 우선 내가 살아야지요.

주변부터 시작해 문제의 승객에게 다가서는 게 해법입니다. 그런데... 또다시 슬쩍 사라지네요.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100% 무표.

한번 승무원의 눈에 들면 뛰어봐야 벼룩입니다. 열차에서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분은 7호차 승객 사이로 숨어들었습니다. 객실까지 입석 승객이 차 있어 힘들었지만 피해가긴 어렵습니다.

고수는 아닙니다. 정말 고수는 화장실에 들어가 버티는 분입니다. 열차가 역에 멈춰서면 승무원이 내려 운전취급 한다는 점을 역이용하는 것이지요.

그분의 첫마디가 가관입니다. “정말 족집게요

 

열차승무원은 승객 개개인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직업의 달인이라 할까요. 경력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그냥 스치듯 지나며 오감에 하나를 더 한 육감으로 승객의 상태를 꼼꼼히 파악합니다.

승무원을 응시하거나 몸을 움츠리거나 얼굴이 굳어있다면 무언가 있는 겁니다. 이때는 불편한 점은 없는지, 도와줄게 있는 지 묻습니다. 요즘도 적지 않은 분이 몸으로 말을 대신하곤 합니다.

정당한 승차권을 지니지 않은 승객은 사뭇 색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냄새가 달라요. 표정부터 손동작 하나까지 뭔가 부자연스럽습니다. 감추려 한다고 감춰지는 게 아닙니다.

부정승차 정말 많습니다. 어떤 승무원은 물 반, 고기 반이라고까지 했습니다. 형태도 무표를 비롯해 정기승차권 위조, 부당 할인, 구간축소 등 다양합니다. 얼마 전 위조한 정기승차권을 사용하다 적발된 승객의 경우 추징금만 수천만 원이었다고 하네요. 방법과 규모에서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철도에서 개집표가 사라진 건 지난 2009년 허준영 사장 때의 일입니다. 경찰청장 출신 사장이라는 특이한 경력답게 그분은 이해 못할 일을 참 많이 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그분은 무모하게 5115명의 정원을 감축하고도 관리지원인력은 오히려 늘렸습니다. 개집표도 그때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열차를 타고 내리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승무원의 눈만 피하면 됩니다.

한 번은 승차권을 버렸다는 승객을 발견했습니다.

아니 승차권을 왜 버려정말 버린 건지 알 길이 없습니다.

또 한 번은 검표 중 내릴 역을 지나왔다는 분을 만났습니다. 친절하게 목적지로 갈 수 있는 열차를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열차에서 내리더니 승차권을 버리네요! 속았다는 느낌과 동시에 구간을 짧게 끊었다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역은 무사통과거든요.

점차 열차 승무원의 검표만으로는 정당한 승객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승객의 양심을 탓하기에 앞서 운영에 빈틈은 없는지 살펴봐야 할 때입니다.

 

공사가 지난 4월 부가운임 관련 승무원의 의견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 부과금을 올리거나 규정을 세분화하자는 등 많은 의견이 나왔습니다. 개집표 부활을 요구하는 의견도 있었고요.

예전방식이 아니더라도 시범적으로 운영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태파악이라도 해보자는 거지요. 대안을 찾기 어렵다면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도 때로는 괜찮은 법입니다.

하지만 공사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듯합니다. 팀장선발 기준에 검표실적을 추가한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는 승무원에게 검표점수는 팀장 선발의 당락을 좌우할 변수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운전취급 등 안전보다 검표에 집중할 가능성이 큽니다. 승객 모두를 부정승차로 규정하고 대응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일까요.

 

철도의 최우선 가치는 안전입니다. 저는 시속 300km, 승객 최소 1천여 명, 안전업무 담당자 달랑 한 명인 KTX의 팀장 선발에 여객전무 검표실적을 끼어 넣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KTX 검표는 팀장이 아닌 관광개발 승무원이 하지 않나요?

사용자 측은 언제나 무한 경쟁을 추구합니다. 자신만 쏙 빼고 나머지 구성원을 서열화합니다. 줄을 세우면 관리와 통제가 그만큼 쉽거든요. 그들만의 생존 본능이지만 경쟁도 경쟁 나름입니다.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F. 내시는 자본주의 승자독식, 무한경쟁의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누가 뭐라던 승무원은 열차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왜냐고요. 그게 사회 전체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동료의 뒤통수를 보며 한 줄로 서기보다 동료의 손을 꼭 잡고 옆에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얼굴도 보면서요.

 

모두의 행복이 나의 행복입니다.

 

 

 

2019.07.02. 백남희

 

(*) ‘뷰티풀 마인드실존 인물 존F. 내시(john F. Nash Jr.)의 삶을 그려낸 2001년 영화.

그 학교에서 가장 예쁜 소위 킹카라는 금발 머리의 여학생이 당구장에 왔다. 남학생은 다들 그 미녀와 사귀기를 원한다. 그녀와 사귈 수 있는 남학생은 경쟁 속에 승리한 단 한명. 그때 주인공은 엄청난 사실을 깨닫는다.

만약 우리 중 누구도 저 금발에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 싸울 필요가 없어

최고의 성과는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잘해야만 하는 거야

아담스미스는 틀렸어

 

내시균형, 패자가 없는 이론으로 그는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댓글52

    비밀글 의견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