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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산다는 거...

  • 작성자무상
  • 등록일2017.10.06
  • 조회수569
 그 영감은 공동묘지 가운데 집을 짓고 50년 가까이 살고 있었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과 더 익숙한 것 같았다. 그는 이십대 무렵 푸슬푸슬한 붉은 황토 흙이 떨어지는 서울근교의 야산 비탈을 이천 평 가량 월부로 샀다. 잡초조차 돋아나지 않는 척박한 땅이었다. 거기다 혼자 움막 같은 집을 짓고 혼자 살았다. 도심에서 실려온 시신을 매장해 주면서 그가 척박한 땅을 몇 평씩 묘지로 팔았다. 혼자 개인묘지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산 땅에 봉분이 꽉 들어차면 그는 옆의 산 주인에게 가서 다시 험한 산비탈을 싸게 샀다. 경사가 급하고 거친 땅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그는 다시 비탈 여기저기에 사람들을 묻어주었다. 그는 자신의 움막을 벽돌로 바꾸었을 뿐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십 년이 흐르고 삼십 년이 흐르고 그가 어느새 칠십대 말의 노인이 되었다. 그는 몇 개의 산봉우리 안에 꽉 들어찬 4만 평 넓이의 공동묘지 가운데 사는 묘지관리인이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의 묘가 그곳에 있어 매년 추석과 한식에는 그와 만나 관리비를 주고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곤 했다. 오십 년 가까이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낯이 익고 가까워졌다. 평생 공동묘지 안에서 죽은 사람들과 이웃해 살아온 그는 인식이 다른 것 같았다. 그의 집 마당과 뒤뜰에도 무덤들이 있었다. 그가 한번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한번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길이었어. 우리 집으로 오는 길가의 봉분 위에 노인네 부부가 앉아 있더라구. 내가 묻어줬던 부부지. 그 노인네들이 나한테 우리 아들이 내일 오는데 잘 부탁한다는 거야. 알았다고 했지. 정말 그 집 자식이 죽어 다음날 영구차에 실려오더라구. 내가 잘 묻어줬지.”
  
  그의 눈에는 죽은 사람들의 영(靈)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치 살아있는 이웃을 대하듯 말했다. 그가 갑자기 뭔가 기억에 떠오르는 표정을 하며 내뱉었다.
  
  “얼마 전에 내가 개**라고 욕한 사람들이 있어. 전화로 자기 조상 묘를 파헤쳐 화장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더라구. 그래서 그렇게 해주겠다면서 유골은 어느 납골당에 모시려고 하느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아무데나 버려달라는 거야. 오지 않겠다고 하면서 말이야. 그런 개..가 있어. 자기가 어떻게 세상에 존재하게 됐어? 그 부모가 입히고 먹이고 키워 사람이 됐을 건데 말이야. 참 나쁜 놈들이 많아. 묘를 지키다 보면 별 놈들이 다 있어. 자기 조상을 맡겨놓고 관리비를 내지 않고 도망가는 것들이 많단 말이야. 지금까지는 그래도 풀을 깎아 줬는데 내년부터는 해주지 않을 거야.”
  
  노인이 된 그는 평생 초라한 모습이었다. 이제 정신도 흐려지는지 눈빛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 자식들은 다 키웠어요?”
  내가 물었다.
  
  “자식들을 다 키웠는데 세상에 나가 굳이 취직을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아들놈 보고 너도 아버지 같이 죽은 사람 묻어주면서 여기서 같이 먹고 살자고 했어. 그래서 아들이 나같이 삽을 들고 땅을 파고 풀을 뽑고 사람들을 묻어주고 있지. 그런데 이 놈이 낭비벽이 많아 백억이나 해 먹었어.”
  
  “백억이요?”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이제는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가 여기 묘지만 빼놓고 주위에 꽉 들어찼지. 몇 년 전에 아들이 빌딩을 한 채 산다고 해서 요 앞 산비탈 땅 이천 평을 팔아서 사줬는데 다 들어먹고 와서 다시 사람 묻어주는 일을 해.”
  
  “백억원을 말하는 거 보니까 아저씨 엄청 부자시네?”
  “아들 빌딩 사준 몇천 평 가격이 그런데 이 전체 몇만 평 내 땅 값을 치면 비교가 안 되는 거지.”
  
  평생 묘지 가운데서 허름한 옷을 입고 산 그는 엄청난 대가를 받은 것 같았다. 그가 묻어주고 자식들까지 버린 죽은 영혼을 돌보아준 보답인지도 모른다.
  
  “부자가 됐으면 즐기고 잘 살지 왜 이렇게 살아요?”
  내가 물었다.
  
  “잘사는 게 별게 있어? 그냥 살던 대로 살다가 죽는 거지. 내가 죽으면 들어갈 묘자리를 마당 뒤쪽에 잡아놨어. 방에서 살다가 죽으면 마당 저쪽에 가서 눕는 거지 뭐.”
  그는 죽은 사람들 동네의 살아있는 이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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