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확인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 확인

철노웹진

[공감李吳] 야매 주간지 '오병이어' 발간 분투기

  • 작성자철도노조
  • 등록일2017.04.19
  • 조회수803

어깨에 힘을 빼고 툭, '공감李吳'는  병점열차 이한주시인과 구로열차 오진엽시인이 2주에 한번씩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나의 2017년은 지난 해 129일 시작되었다. 이러려고 74일을 버텼던가 하는 자괴감이 드는 파업 복귀였지만, 억울했지만, 분했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침 뚝 떼는 일상은 나를 위로해주거나 기다려주지 않았다.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었는데 그전처럼 차를 타고 방송을 하고 문을 열어야 했다


촛불이 옮겨 붙기 전부터 광장을 지켰다는 자부심도, 새로운 역사를 내 엉덩이로 써냈다는 우쭐함도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바로 옆 동료들이 보였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고은 그 꽃전문)


74일 간의 곁을 지켜준 동지, 그들이 고마웠다.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 지부BAND에 글이 올라올 때 마다 엄지 척, 좋아요를 열심히, 그리고 진심으로 눌러주었다. 좋아요를 더 많이 눌러주고 싶은데, 가끔 지부장이나 지부 간부들이 전해주는 조합 소식 말고는 글이 많이 올라오지 않았다.


좋은 글이라도 퍼 와서 지부BAND의 황량함을 덮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SNS를 하면서 갈무리했던 글들을 하나 둘 올리다가 어느 순간 차라리 내가 1인 잡지를 만들자는 객기가 생겼다.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씩 내놓아서 함께 나눴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병이어>라는 그럴듯한 이름도 내걸었다.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하면 감당할 수 없을 텐데 걱정을 하면서도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동료들을 힘껏 응원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동료들의 좋아하는 시나 그림, 음악 등을 물어보고, 그들의 취미나 특기 등을 수소문해 가면서 야매잡지를 채워나갔다. 빈 칸이 생기면 퀴즈도 내고, 널리 회자는 말들의 유래를 찾아보기도 했다. 또 백인백색 그들이 무슨 글을 좋아할지 몰라서 때론 신춘문예 당선 작품을 모아 오기도 하고, 요즘 대세라는 팟캐스트 순위도 게시하기도 했다. 질보다 양이어서 건강에서 정치까지 뒤죽박죽 이것저것 다 모아놨다. 그 중에 하나만이라도 그들의 눈길을 머물게 하는 꼭지가 있다면 성공이라는 생각을 했다.


퀴즈에 상품이 있으면 더 열독할 거라는 동료의 귀뜸에 효용성이 큰 상품을 찾다가, 로또 주기에 맞춰 오병이어의 편집 일정이 정례화 되었다. 목요일 까지 원고 마감. 목요일 저녁 편집, 금요일 새벽 지부밴드에 게시, 토요일 저녁 퀴즈 당첨자 발표.


그렇게 큰 환호를 받는 고급진 잡지는 아니었지만 꾸준하다 보면 단골이 생기기 마련이어서 고정 꼭지가 몇 개 생겼다.


좋아하는 시를 돌아가면서 추천하기도 하고, 친화력이 뛰어난 동료는 철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는 병점역 근처 만둣집 사장님부터 사무소 청소를 해주시다가 정년을 맞으신 누님(?)에게 까지 전해졌다. 또한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동료는, 오래 지나도 빛바래지 않는 팝송들을 선곡해주고 있다. 어떤 동료는 매주 알쏭달쏭한 퀴즈를 만들기 위해서 놓았던 책을 다시 집어들고, 또 다른 동료와는 파업 때 찍은 사진으로 지상 전시회도 의논하고 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우리가 74일 간 인증샷을 찍어댔던 광장의 명소를 찾아나서는 서울 나들이도 준비하고 있다.


100명 밖에 안 되는 작은 소속에서 이렇게 열정과 재주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매주 놀라고 있다. 관심을 갖는만큼 그 사람이 자세히 보였다.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전문)


애정을 갖고 사람들을 보면,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는 그 사람만의 재능이 더 잘 보였다. 나는 그들의 취미와 관심이 일회적으로 <오병이어>에 한번 실리고 버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손수 써내려갔던 글들이 정년을 맞이할 때쯤 한 권의 빛나는 잡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2017년 어느 한 때, 그들의 숨결을 차곡차곡 모아놓으려고 한다.

 

얼떨결에 더 큰 물에 불려왔다. 야구하랴, 축구하랴, 목요일엔 <오병이어> 편집하랴, 집 앞 냇가에서 노는 것도 충분히 바쁘고 재밌는데, 또 다른 일이 주어지는 걸 굳이 뿌리치지 않았다. 74일 간 싸워온 또 다른 철도노동자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내 재주 없음을 탓할지언정 구구한 이유를 대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못난 게 나와 비슷하고, 겹치는 일상도 적지 않은 20년 지기와 알아서 함께 하라는데.


구로열차 오진엽 차장은 정감있게 글을 잘 쓴다. 따뜻하고 속 깊은 그의 글에 기대서, 공감되는 세상사에 열심히 박수 치리라. 오진엽과 함께, 공감李吳.



 

이한주 병점열차 조합원

댓글5

    비밀글 의견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