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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노웹진

[김명환의 거북이걸음] 행복

  • 작성자철도노조
  • 등록일2017.04.19
  • 조회수192




 


아무래도 너, 집에 가야겠다. 엄마가 미쳤대…….”


대구에서 노동자들과 문학소모임을 하며 지내던 시절이다. 누나의 연락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걱정했던 것보다 어머니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교회 목사님께 부탁해서 내 직장을 마련해 두었다. 교회 부설 출판사 편집 일이었다. 그런 데 취직할 생각은 없다고 말하는 순간 어머니는 까무러치셨다. 울며 겨자 먹기로 어머니와 함께 출판사에 가서 면접을 봤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기로 하고 출판사에서 나오자마자 어머니와 헤어졌다.

 

, 잊은 게 있으신가요?”

출판사에 다시 들어가자 편집장이 환하게 웃는다.

드릴 말씀이 좀 있어서요.”

자리에 앉자마자 내가 면접에서 떨어져야 하는 이유를 주절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열릴 새로운 세상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공급받는 세상이며, 나는 그 세상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면접을 본 이유는 어머니의 상태가 아주 안 좋기 때문인데, 내 입으로는 못 다니겠다고 못하겠으니 편집장님께서 제발 나를 떨어뜨려 주십사고 읍소했다.

선생님의 부탁대로 어머님께 전화 하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얼굴이 말이지요, 너무 어둡습니다. 신념을 실천하며 사는 분의 얼굴이, 왜 행복해 보이지 않는 걸까요?”

편집장이 내 눈을 쳐다봤다. 그녀의 눈은 맑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행복한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편집장의 소식을 들었다. 후배 시인에게 출판사 면접을 보며 겪은 일을 이야기 하자, 후배가 그 출판사에 다녔다는 것이다. 편집장은 30대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렇게 열정적으로 한 생을 산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후배가 말했다.

 

세상에 눈뜨고부터,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그럭저럭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내 길을 걸어온 셈인데, 신념을 실천하며 살아왔으니 내 얼굴은 행복으로 빛나야 한다.

그런데, 선생님의 얼굴이 말이지요, 너무 어둡습니다.”

가끔, 해맑게 웃으며 내 눈을 쳐다보던 편집장의 눈망울이 떠오르곤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 삶이 버겁다.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이해는 하겠는데, 느끼지는 못한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나이도 되지 않았나 싶다. 약해빠진 시인나부랭이가 꿈꾸는 세상이 오지 않는다 해도, 꿈을 꾼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빛나는 꿈을 꾸는 사람이라고 주문을 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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