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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노웹진

그래도 안내에 따라야 합니다

  • 작성자철도노조
  • 등록일2017.04.20
  • 조회수832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이 슬픔과 분노를 넘어 허탈감에 빠져 있다.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건 사망자 대부분이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에 따라 구조를 기다리다 변을 당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승무원들이 적절한 탈출 유도만 했다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유가족은 물론이고 온 국민이 비통함을 넘어 분노하고 허탈해하는 이유다.

그래서 더욱 염려스러운 점이 있다. 이번 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일단 '승무원의 안내는 무시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라는 인식을 갖게 될까봐 우려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직업의식 때문이다. 나는 열차승무원으로 근무한다. 정확히 말하면 신창역에서 광운대역 구간을 운행하는 1호선 전동열차 승무원이다. 
전동열차에 탄 승객 수는 선박이나 항공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승객의 안전을 나와 같은 열차승무원이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열차승무원들은 사고나 화재 등의 위급 상황을 대비해 수시로 교육을 받는다. 위급 상황 시 최우선 과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인명 구조'다.
사고가 발생하면 당연히 승객들은 당황하고 우왕좌왕한다. 이때 꼭 필요한 것이 '비상시 업무 매뉴얼'에 따르는 것이다. 승무원이 중심을 잡아 주지 않으면 혼란이 가중돼 자칫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열차를 예로 들면 승무원의 안내를 무시하고 무작정 비상 콕을 개방해 뛰어 내린다면 옆 선로를 지나가는 열차에 받히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철도 현장에선 열차고장 등의 사고 처리를 위해 뛰어다니던 직원들이 일에 몰두한 나머지 옆 선로를 지나는 열차에 치이는 가슴 아픈 일이 종종 벌어진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안산이다. 아내는 지역 동사무소에서 사회복지 담당자로 근무한다. 세월호 침몰로 변을 당한 사람들 중에 아내가 알고 있는 기초생활 수급자 학생도 몇 명 있었다.
그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내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고 목소리에는 울음이 배어 나온다. 우리 부부는 매번 먹먹한 가슴을 치며 한숨짓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곤 한다.

며칠 전, 나는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아내에게 선전포고(?)해 버렸다.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된 기분으로 말했다.
"혹시 그런 일이 닥치면 나는 가장 늦게 빠져나올 거야."
"......."
세월호 선장이나,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당시의 기관사처럼은 하지 않을 거라고 단단히 다짐한 것이다.

아내는 나를 잠시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긴, 무슨 말을 하랴! 흔들리는 눈빛에서 혹여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비겁해질까 두려워하는 남편의 마음을 읽은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아내 앞에서 다짐함으로써 내 말에 도장을 쾅 찍고 수갑을 단단히 채웠다. 절대 고쳐 쓰거나 무를 수 없도록 열쇠는 마음속 바다 깊이 던져 버렸다.

나는 감히 승객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비행기든, 배든, 열차든 사고가 발생하면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주었으면 좋겠다고.
비록 이 호소가 여러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해 너무나 염치없고 죄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그래야 한다고. 그들이 나쁜 승무원이었을 뿐, 모든 승무원이 다 그렇지는 않다고.
오늘도 나는 격무 속에서 승객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서로를 믿어 주는 만큼 우리 사는 세상도 두터워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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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개월쯤 된 2014년 7월 어느 날 이 글을 썼나봅니다. 정말 먹먹함과 허탈함과 분노의 나날이었습니다. 그 3개월이 3년이 될 줄은 또 어찌 알았겠습니까. 마음껏 슬퍼하고 아파할 자유마저 허락받지 못해 슬픔을, 아픔을 수장시켜야 했고, 인양하는데 꼬박 3년이 걸렸습니다. 이제서야 밖으로 나온 그 아픔과 슬픔이 30년, 300년, 아니 3000년 동안 잊어선 안 될 것임을 압니다. 
304명의 죄없는 영혼들의 명복을 빕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인간의 언어는 왜 이리 미약한지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박청환 병점열차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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