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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노웹진

[상롱이의 잡설]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 살아가기

  • 작성자철도노조
  • 등록일2017.05.15
  • 조회수739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난 겨울 광장에서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며 수도 없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다. 헌법 조항을 그대로 가사로 만든 이 노래를 총파업의 흥분과 촛불 시민의 함성이 어우러진 광장에서 즐겁게 불렀지만, 국민학교를 졸업한 나 같은 꼰대에게는 적잖은 충격이기도 했다.

 

국민학교 시절,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나를 빈혈 환자로 만들었던 운동장 조회에서 끝없이 이어지던 교장선생님의 훈시는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소중함과 산업역군이 되어야 할 국민의 의무로 채워졌다. 그때 그 시절에 공화국이라는 단어는 불온함 그 자체였다. 공화국이라고 말하면 잡혀갈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가 있었다. 교련시간에 총검술과 제식훈련을 했던 중고등 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생 전방입소훈련까지 오로지 국가를 지키기 위해 우리 연배의 꼰대들은 그렇게 자랐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을 비판한다는 것은 인생을 걸어야 하는 비범한 결심이 필요했던 시절을 거쳐 왔다.

 

그렇게 살아왔던 나와 같은 우리들에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일깨워준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와 어깨를 걸었던 시민들이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대통령이라는 것도 시민의 권리를 일시적으로 위임한 정치제도에 지나지 않은 것임을 일깨워 주었다. 대통령이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정당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위임된 권력을 회수할 수 있음을 말해 주었고, 촛불의 광장은 그것을 실현했다. 대통령을 탄핵하는 일은 목숨을 걸 필요도 없고, 인생을 거는 비범한 결심을 할 필요도 없는 시민의 자유로운 권리임을 말해 주었다.

 

돌이켜 보건데, 30여일이 가까워 오는 파업에도 꿈쩍하지 않는 정부와 철도공사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던들, 나와 같은 꼰대들이 거의 하루도 안 빠지고 촛불의 광장에 나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촛불의 광장에 나가지 않았던들, 나와 같은 꼰대들에게 공화국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볼온한 그것이었을 것이고, "학생은 학생답게, 근로자는 근로자답게 국민의 본분을 지키고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그때 그 시절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촛불의 광장에는 참으로 다양한 시민들의 관심과 주장들이 모였다. 헌법을 유린한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는 외침은 같았지만, 시민 각자의 출발선은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인권의 문제에서, 교육의 문제에서, 환경의 문제에서, 누군가는 노동의 문제에서, 평화의 문제에서 출발했고 그 모든 것이 광장에 모였다. 2009, 2013년 우리의 총파업을 견뎌주었던 그 시민들, 철도노동자의 주장을 들어주며 불편해도 괜찮다고 격려해 주었던 그 시민들이 그곳에서 참으로 다양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광장에서 마주친 하나 하나의 주장과 관심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와 우리의 가족이 살아가며 부딪치고 해결해야할 그 무엇들이었고, 나와 우리의 삶이었다.

 

촛불의 광장에서 우리는 총파업 투쟁중인 철도노동자였다. 이명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가장 강하게 저항하고 투쟁해온 우리들이었다. 09, 13, 16년의 총파업은 일수로만 109일에 달하고 89명의 해고와 수천명의 징계, 수백억원 손해배상 청구를 감수하면서도 무릎 끓지 않는 불굴의 노동자로 촛불을 들었다. 우리의 투쟁은 분명 촛불의 광장과 시민들의 저항을 만들어 낸 마중물이었지만, 한편으로 총파업을 끝내고 현장에 복귀한 나와 같은 우리들은 촛불의 광장에서 멀어져 갔다


생각해보면 철도노동자로 살아왔던 20년의 시간동안 많은 저항과 투쟁, 파업을 실천하고 경험해 왔지만, 20년은 오로지 철도노동자의 경계에서만 이루어져 왔었다. 철도노조 역시 민주노조 쟁취 이후 십수년간에 걸쳐 숱한 투쟁과 파업으로 단련되어 왔지만, 그 십수년이 철도의 경계에서만 이루어져 왔었다. 광장의 이야기들은 나와 같은 철도노동자에게 철도의 경계를 넘어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 우리의 삶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것이었다.

 

2017년의 봄이다. 대통령 선거도 끝났고,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 거는 기대가 넘치고 또 넘친다. 그런 기대들이 모여 이미 불만의 겨울을 잉태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민주공화국의 시민은 스스로의 힘으로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지난 겨울 광장에서 우리 모두가 확인했던 진실이었다


시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그 누군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민의 끊임없는 참여와 행동이 더더욱 중요하다. 나와 같은 우리들 역시 철도의 경계를 넘어 시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조금 더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하고자 하는 그런 노력과 행동이 필요하다. 시민의 권리를 위임받아 구성된 정치권력을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힘은 오로지 권리를 위임한 시민들의 부단한 참여와 행동일 뿐이라는 것이 요즈음 국민학교를 졸업한 꼰대에게 드는 생각이다.

 

전상용 대창동력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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