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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노웹진

[공감李吳] 어머니와 기차, 한가위

  • 작성자철도노조
  • 등록일2017.10.06
  • 조회수673




어머니의 고향은 충남 연기군 서면이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청주나들목으로 빠져 나오면 바로 닿는 곳, 그러나 아직까지 운전면허가 없는 나에겐 어머니의 고향은 기찻길 따라 내판이었다.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완행열차를 타고 조치원 다음 역인 내판역에 내려 십리 길을 걸어야 어머니의 고향, 양골이 나온다.

마음처럼 어머니는 친정에 자주 내려가지 못하셨다. 일년에 한 두 번, 외할아버지 생신 때나 집안 큰일이 있을 때 내려가시는 게 고작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머리가 굵어진 형들은 여간해서 어머니의 친정 나들이에 동행하는 걸 꺼려했지만 나는 어머니 치마자락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삼양라면 봉지에 담아온 삶은 달걀 세 알과 칠성사이다가 나를 이끌었다. 게다가 외가댁에 도착하기만 하면 외할아버지 드리려고 어머니가 가져온 미루꾸와 사탕 꾸러미도 당연히 내 차지가 되었다.

하지만 사탕의 대가는 썼다. 용산역에서 내판역까지 기차길은 어린 나에게 한계 체험이었다. 삶은 달걀 하나에 칠성사이다 한 모금을 서너 번 나눠 먹어도 세상에서 가장 먼 내판역은 쉽게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도 내판역은 아니었다. '원숭이 똥구녕은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라는 노래를 배운 것도 그때 그 기차 안에서 였다. 하지만 나에게 기차는 빠르지 않았다. 기차는 세 시간 삼십 분 동안 지루하게 이어지는 들판이었다.


얼마나 더 가야 내판이 나오느냐고 어머니에게 물을 때마다 어머니는 한결같이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했다. 염불보다는 잿밥 편이었던 내가 좀이 쑤셔 짜증을 부려도 여느 때와 달리 어머니는 상냥하게 받아 주셨다.

나에게 기차의 첫 기억은 몸살이 날 만큼의 지루함이었는데 어머니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차창 밖을 내다보시다가 칭얼거리는 내게 발그스름하게 홍조 띈 얼굴로 눈을 맞춰주시던 그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보름달이라고 그만큼 예뻤을까.


어머니에게 기차는 자유였다. 고단한 서울살이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는 차창 밖 풍경 하나 하나는 처녀 적 꿈을 되돌리는 영사기였으리라.


차창 밖에서 어머니는 나물을 캐다말고 가난이 싫어 도망치고 싶었던 동네 뒷동산을 만나고, 벌거벗고 개헤엄을 치던 개울을 만나는 것 같았다. 

견디다 견디다 못 견디고 '내 다시는 엄마 따라 기차를 타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할 때쯤, 꼭 그때서야 완장을 찬 차장아저씨는 '이번에 내리실 역은 내판, 내판역입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천안도 아니고 조치원도 아니고 대전도 아닌 내판, 아는 사람만 알고 대개의 사람들이 귓등으로 무심코 지나쳤을 간이역을 말쑥하게 제복을 차려입은 차장 아저씨가 불러주었을 때, 나는 감격에 겨워 환호응답을 했다. 그리고 나는 또 갈등을 했다. '다음에 또 엄마 따라 와, 말어'




초동리 노래자랑

너도 나도 떠나왔다 싶어 뒤돌아보면
싸리비질한 운동장 그대로
이순신 장군이 지켜선 초동국민학교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이
펄럭펄럭 내걸리는
대보름맞이 초동리 노래자랑
서울서 큰돈 벌었다는 근식형님과
1년 후배 성식이
전기밥솥 냉장고 테레비 쌓아 놓고
사진빨 나란히 웃음짓는 동안
고향땅만 서면
홀짝홀짝 취해가는 사람들이
애국조회 교단
즉석 밤무대 가수가 되어
뽕짝처럼 간드러지게 꺾여 넘어가는
팔월 한가위
불콰한 양달 경구氏 흥을 돋고
덧니처럼 반짝이던
새침떼기 동창생 순이가
애 둘을 들쳐업고 얼러안고
엉덩이 쑬럭이는 내 고향 초동리


이한주 | 병점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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