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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노웹진

[김명환의 거북이걸음] 어느 날 정신병원을 나오면서

  • 작성자철도노조
  • 등록일2017.10.06
  • 조회수446



 

 

지난 817일치 철도노조 주간브리핑에 실린 진료비, 약값 지원 받으세요.”를 읽으며 무릎을 쳤다.

! 도대체 나는 왜, 병원에 갈 생각을 못하고, 그 고통을 견뎌왔던 것일까?”

 

주간브리핑공사가 단체협약에 따라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명시된 정신 및 행동장애(코드번호 : F00-F99)에 해당하는 질병, 공포성 불안장애, 강박장애, 스트레스에 의한 장애, 식사장애, 비기질성 수면장애 등의 병원 진료비와 약값을 횟수와 비용 제한 없이 전액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32교대 근무를 한 지난 10년은 지옥이었다. 야간근무 휴게시간에 잠을 못 자는 것이다. 한참 잔 거 같아 후다닥 일어나면 5분 지나있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깜빡 잠들고 후다닥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잠깐 자는 동안에도 악몽에 시달렸다. 소화불량, 위장장애, 체중감소가 따라왔다. 한 달에 1킬로씩 몸무게가 빠졌다.

 

일근 자리가 생기면 만사 제쳐놓고 지원했다. 일근을 하면 한 달에 1킬로씩 몸무게가 늘었다. 고무줄 몸무게로 10년을 살았다. 44킬로까지 빠졌을 땐 죽는 줄 알았다. 1년 동안 단시간근로를 하고 살아났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단시간근로를 계속할 수도 없었다.

 

인재개발원 휴먼안전센터에 상담하니 정신과 진단을 받으라고 한다. 질병분류코드 ‘F00’에서 ‘F99’까지면 진료비 지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정신과병원을 찾았다. ‘질병명 비기질성 수면장애, 한국표준질병분류번호 F519’ 진단을 받았다. 질병분류코드가 좀 이상했지만 정신과 전문의가 맞으려니 생각했다. 진단서 스캔본을 휴먼안전센터에 보냈더니 비기질성 수면장애는 지원 가능한 질병인데, 질병분류코드가 ‘F519’라서 안 된다고 한다. ‘F00’에서 ‘F99’까지만 가능하다고 한다.

 

의사선생님이 코드 입력을 잘못한 줄 알고 다시 병원에 가니, 선생님이 웃는다. ‘F51’은 비기질성 수면장애를 총칭하는 개념이고, ‘F519’는 비기질성 수면장애 중 내가 앓고 있는 질환이라고 하신다. 그래도 회사에서 4단위 숫자는 안 된다고 하니 3단위 숫자로 발급 해달라고 부탁했다. ‘F51’로 진단서를 발급받아 진료비 지원 신청을 하니, 정신질환 관련 신청은 내가 처음이란다. 진료비 지원을 받으면 중점관리대상자 지정이 될 텐데 괜찮겠냐고 묻는다. 이미 소속에서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거 먹고, 새벽에 못 일어나는 거 아녜요?”

새벽 첫차를 놓치는 사고는 몇 년에 한 번씩 터지는 대형사고다.

걱정 마세요.”

의사선생님이 웃는다.

혹시 몰라 동료에게 이야기하고, 휴게시간에 수면제를 먹었다. 10분 만에 스르르 잠들어, 10년 만에 푹 잤다. 기상 알람에 거뜬히 일어났다. 휴게시간에 잘 수 있으니 야간 출근이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약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지 수면시간이 자꾸 짧아졌다. 악몽을 꾸다 후다닥 일어나면 기상시간은 아직 멀었다. 약을 늘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약 복용 시간을 늦췄다. 약으로도 잠들 수 없는 몸이 되기 전에 이 끔찍한 32교대를 벗어나야 할 텐데. 2연속 야간근무는 결국 나를 죽이고야 말 것이다.

 

평생, 가정을 팽개치더니, 그놈의 노동조합은, 그거 하나 못 바꾸고, 도대체 뭘 했냐고!”

수면제 수면시간이 자꾸 짧아진다고 하니 아내가 비웃는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스스로에게도 작아지기만 하는 요즘이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정당당하게 2연속 야간근무 철폐를 요구하지 못하고, 나와 동료들의 건강을 위해 싸우지 못하고, 일근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소속을 옮기며, 단시간근로를 하며, 정신과진료를 받으며, 병원비 지원이나 받으며, 수면제 수면시간이 자꾸 짧아진다고 한탄하며, 이렇게 비루하게 버티는 것이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은, 스스로의 옹졸함을 한탄했지만, 어느 날 정신병원을 나오면서 나는, 스스로의 비루함을 한탄했다.



김명환 | 부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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