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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노웹진

[시선] 순대국과 비트코인

  • 작성자철도노조
  • 등록일2018.02.12
  • 조회수335

순대국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다. 어려서는 이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비릿한 냄새와 꿀꿀이죽을 연상케 하는 비주얼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20대 중반부터 순대국은 나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순대국을 즐겨먹게 된 데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무엇보다 가성비가 좋았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뚝배기 한 그릇은 가난한 노동자의 삶을 달래주었다. 끼니를 거르기 쉬웠던 자취생활에서 아침 겸 점심식사로도 부족함이 없는 든든한 단백질 보충원이기도 했다. 뿐인가. 고된 노동 후에 늘어진 몸무게를 이끌고 동료와 마주 앉아서 소주를 반주 삼아 먹는 순대국은 정말 행복한 밥상이었다.

 

나는 일부러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는 편이다. 맛집이라고 찾았다가 배신감을 느끼고 돌아섰던 몇 번의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본디 미각이 좀 둔감하다. 여럿이 음식점에 가서 주문할 때도 같은 걸로주 문스타일이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는 가끔씩 맛집을 검색해보기는 한다. 하지만 대개는 밥 때가 되면 그냥 주변에서 대충 식당을 찾아 들어간다. 그러다 가끔 의외의 만족감을 안겨주는 식당을 만났을 때는 기분이 참 좋다.

 

강원도 원주 시내의 자유시장 지하 1층에 가면 강릉집이라는 순대국집이 있다. 여기가 똑 그런 곳이었다. 우연히 찾게 된 그 곳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것 중에서는 최고다. 두 번째 그 곳을 찾았을 때는 마침 점심시간이었는데,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서야 나름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내가 자발적으로 줄을 서면서까지 밥을 먹은 것은 이 집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곳은 맛도 좋지만 인심도 좋다. 말만 잘하면 순대나 고기를 리필도 해준다. 주인장이 먼저 더 주랴하고 물어볼 때도 있다.


 

나에게 강릉집은 맛이나 가성비 말고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곳이다. 나는 등받이 없는 기다란 나무 의자에 앉아 주인장과 서로의 안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가 좋았다.

 

특히 주인장 모녀가 손님을 대하는 태도나 함께 일하는 모습에서는 어떤 영감을 받게 된다.

한 달에 두 번 쉬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선 채로 쉼 없이 움직이는 노동이 무척이나 힘들 터다. 그럼에도 두 모녀는 늘 편안하고 웃는 모습이다. 그게 감정노동의 가식으로 보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혼자 온 손님에게는 말 한마디라도 더 건네고, 배고파 보이는 사람에게는 말없이 고기를 더 얹어주는 모양이 정겹다.

 

간혹 등 뒤에 길게 늘어선 줄에 부담을 느낀 손님이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려고 할 때가 있다. 그러면 그러지 말고 편안하게 천천히 먹으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 모습에서 예의 장사꾼의 조바심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두 모녀의 일하는 모습에서 어떤 관계의 교감을 느낀다. 좀 거창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노동의 품격 같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금융자본주의, 아니 투기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욕망의 사회에서 노동의 품격을 논하는 것이 구태의연하게 들릴 법도 하다. 게다가 21세기 자본주의를 연구한 토마 피케티에 따르면 앞으로 상당기간 상속에 의한 부의 축적이 가능할 뿐, 노동과 저축을 통한 부의 축적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지 않은가.

 

이 시대에 정직하게 열심히 노동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칭찬의 대상이 아니다. 타자들이 능력자로 인정받는 풍토에서 청소년들은 장래희망으로 빌딩을 소유하여 놀고먹는 꿈을 꾼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람들은 저마다 오른손으론 노동을 하고 왼손으론 욕망의 도박장을 기웃거리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욕망의 도박장에는 삼성의 이재용부터 가난한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모여 있다.

 


최근의 가상화폐 사태는 욕망의 사회에서 절망이 만들어 낸 필연적 산물이다. 유시민 작가는 작금의 가상화폐 투자열풍을 사기, 도박장 등으로 단호히 규정한다. 그리고 그 논거 가운데 하나로 주식 등과 비교하여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분을 언급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주식 투자나 가상화폐 투자나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연봉 1억이 넘는 유학파 석박사들이 모여서 초단타매매 프로젝트에 골몰하고, 며칠 사이에 자산가치의 80%가 등락하는 주식시장 업종의 어디에 실물의 가치가 있는가. 부동산 불패신화를 사수하는 수십억 하는 아파트에는 어떤 실물적 가치가 있는가. 다만 그것이 권력과 자본에 의해서 허가를 받았냐는 여부만 다를 뿐, 어차피 가상화폐 투자, 주식 투자, 부동산 투자 모두 투기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거대한 도박장에 다름 아니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저마다 어떤 일을 한다. 세상에는 우리가 채 알지 못하는 수 만 가지의 직업이 있다고 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 어떤 노동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라지만, 일이라고 다 같은 일일까. 다들 먹고 살기위해서 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는 몹쓸 일도 있고, 쓸데없어 보이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에서 꼭 필요하고 가치 있는, 노동의 품격이 느껴지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불평등이 노력과 재능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노동과 저축으로는 부를 축적할 수 없는 미래, 결국 가진 놈들의 밥상만 차려줄 뿐인 승산 없는 도박장에 어쩔 수 없이 내몰리는 상황은 슬프다. 그리고 부당하다.

역설적으로 절망적 현실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이대로 쭈욱 가도 되는 것인지, 정직한 노동의 가치와 당당한 노동자의 품격을 전면에 내세워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서민들에게 맛있는 밥상을 내어주는 강릉집에서 행복감과 고마움을 느낀다. 그래서 강릉댁 모녀가 부디 건강하게 오래 동안 그 자리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언젠가 순대국밥을 좋아하는 아들과 함께 강릉집에 간 적이 있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 무슨 일인가를 할 것인데, 기왕이면 여기처럼 돈도 벌면서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주는 일이면 참 좋겠다. 그지.”


아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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