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확인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 확인

철노웹진

당신의 버킷리스트에 새겨질 “시베리아”를 확신합니다.

  • 작성자철도노조
  • 등록일2018.02.12
  • 조회수329

[리뷰] 박흥수 저 시베리아 시간여행을 읽고

 


 

철도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슴속에 꿈꿔보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

하지만 그것이 소비에트 연방이 꿈꾸었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인지, 언론과 교육의 세뇌때문인지, 어딘지 모를 위화감에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았다.


그 어려운 일을 철덕(철도덕후) 박흥수 기관사는 해내었고, 책으로 발간까지 했다. 그것도 너무 쉽고, 재미있게. 열차를 타고 달리며 만난 역사와 문화와 사람들을 생생히 담아내며 말이다.

그 이면에는 그의 철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밤을 지새우며 넘겼을 수많은 사료들, 그리고 가슴속에 여전히 불타는 인류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책의 구성은 인천공항에서 시작해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여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거쳐가는 도시와 여정, 유물과 사적지, 여행팁들을 그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만나고, 마신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마치 내가 시베리아 여행을 하는듯한 착각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놓지 못할 만큼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정말 재미가 있다.

 

절대 기획된 찬양이 아니다. 철도 입사 전부터 그의 저서들을 읽어보았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이겠지만, “철도의 눈물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 논리적으로 철도민영화가 가져올 폐해를 상술했지만 일반인이 보기엔 논문을 대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는 철도의 역사를 통해 바라본 근현대사를 사건을 중심으로 쉽게 조명하려했지만 역시 일코(일반인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은, 마니아용이라 느껴졌다.

 

그러나 이번엔 확실히 달랐다.

 

제국주의가 세상의 모든 민초들을 억압하던 시대에,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인류의 소박한 꿈을 위해 동토의 땅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선조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을 모르고, 모른체 살았던 스스로를 반성케 했다.

 

그것이 비록 사회주의니, 혁명이니 하는 이름의 낯선 거부감을 품었다 하더라도 자본에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대신하여 대안사회를 고민하고, 먼저 나섰던 그들의 시대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분명 무거운 질문을 던져준다.


물론, 품었던 이상과 달리 현실의 이면에서 독재와 폭압으로 얼룩진 암흑의 역사와, 혁명가를 무심한 단발의 총성으로, 혹은 허망하게 얼어 죽이는 냉혹한 역사를 은폐하지 않으며,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도 쏟아 놓는다.

 



한편, 우연히 만난 북녘의 건설노동자들과 남북이 어울리는 풍경을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저려오는 애잔함에 스스로도 당황했다.

 

담배로어책을 나누고, ‘한민족대토론회를 펼치는 순간순간마다 전해지는 그 진심어린 마음들은 나도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맘으로 이어진다.

 

, 너무 자연스럽게, 시퍼러이 살아있는 국가보안법 제8조 회합, 통신 죄를 깜빡할 만큼 이 부분은 정말 실화를 의심케 한다.

 

뭉클함은 잠시, 뉴스만 틀면 자극적, 악의적 비방이 가득한 언론과 정치인들의 꼴을 보고 있자면 한 숨만 나온다. 평화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남북 철도가 연결되고, 우리의 철도로 시베리아를 달릴 수 있다는 상상은 그저 상상으로 그치는 걸까.

  

한 세기 전 서울역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던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뛰었던 설움이 그랬듯이 그 조차 가로막혀 달릴 수 없는 녹슨 철마의 서러움은 언제쯤 풀어질 수 있을까.

  

무거운 마음을 내려두고, 시베리아라는 미지의 땅을 덜컹이며 달리는 나를 상상해본다. 바이칼호에서 오물인가 하는 이름도 요상한 생선요리를 먹으며, 민족도 언어도 다른 이들과 마주앉아 사발면에 보드카를 나누며, 손짓 발짓으로 수다를 떨고, 고스톱으로 루블화를 거머쥐고, 여유롭게 개평을 나눠주고 있을 날이 머지 않았다. ... 여자친구만 허락해주면 되는데... ...

  

곡선을 돌아 눈발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광주행 구형 새마을호의 후부를 보며, 시베리아횡단열차도 거기서 거기것지...하며 애써 위로해 본다. 

 

아직 이불 밖은 위험한 겨울. 시베리아 혹한의 눈보라가 살을 에든 어떻든, 뜨끈한 전기장판위에서 귤 한바구니 차고 누워 지지며, 책장을 열어 저자가 던진 질문과 감동들을 나눠보면 어떨까.

 

 

이 리뷰를 쓰는 지금도 자동차 연료펌프가 얼었다며 보험사와 전화를 붙들고 안절부절하시다, 조금은 어리숙한 웃음과 약간은 초점 잃은 눈동자로 무언가 또 엉뚱한 말들을 쏟아 낼 것 같은 기관사 박흥수 형님.

 

어쩌면 그저 사는 대로 살아가던 내 가슴에 시베리아를 품게 해준 그에게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자신컨대 이 책을 덮을 때 즈음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예약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뒤지는 당신을 보게 될 것이다.(홈페이지가 러시아어인 것은 함정) 만약 혼자임이 부담스럽다면 언제든 함께 떠나 보자. 츠드라스뜨부이찌!



이재근  서울기관차승무지부

댓글0

    비밀글 의견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