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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노웹진

[공감李吳] 어깨 힘을 빼고

  • 작성자철도노조
  • 등록일2018.03.05
  • 조회수423




봄이다.

달력에 봄이라는 날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기에, 각자 느끼는 봄의 전령은 다르게 온다. 내게 봄은 사회인 야구 리그 개막과 함께 시작된다. 어느덧 사회인 야구를 한 지 20.

그 시절 사회인 야구는, 야구병 환자들만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비용도 만만찮은데다, 구장도 너무 멀었다. 2시간 경기를 위해 편도 2시간씩 4시간을 오가는 것을 당연한 듯 여겨야 했다. 더구나 24시간 맞교대 철도청 시절에 야구를 한다는 건, 가정과 사생활을 다 내려놓고 미치지 않으면 하지 못할 마약이었다.

이제나 그제나 뜨뜻미지근한 내가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건, 미친 사람 천국에서 나 하나쯤 미치지 않아서다. 야구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선수가 많으면 잠시 쉬고 부족하면 다시 시작하고. 그러다 보니 실력은 맨 날 제자리, 이제는 제자리도 지키지도 못 하고 자꾸 밀려난다.

우리 팀 선수 하나는, 가장 잘 할 때 야구를 그만뒀다. 더 이상 잘 할 자신이 없어서.

근데 난 더 이상 잘 할 수도 없는 지금, 비로소 처음으로 야구가 재밌어진다. 이왕이면 잘 하고도 싶다.

 

지금보다 더 잘 할 때, 야구를 더 잘 하고 싶었다면 조금은 나았을 텐데, 세상은 자주 어긋난다. 그때마다 짜증내는 것도, 아쉬워하는 것도 별 도움이 되지 않더라. 매일 날씨가 좋으면, 그 땅은 사막이 된단다. 가끔 비 속으로 등떠밀리는 것도 내 삶 아니던가. 진창을 건너다 보면 맑게 갠 날에는 보이지도 않던 또 다른 길이 열린다. 그때 그 길은 내 발걸음이 관성적으로 내딛던 익숙한 그 길이 아니리라.




각 개인의 공과가 손금처럼 뚜렷하게 드러나는 야구는 이길수록 좋다. 팀 분위기도 살아나고 소소한 실수나 불만들도 헤헤 웃음 속에 묻힌다. 문제는 나만큼 우리 팀도 20여년의 세월을 이고 뛰다보니 이기는 게 수월찮다.

어떻게 하면 이길까 골몰하다가 이제는 잘 지는 법을 찾는다. 들뜨지 않고, 탓하지 않고. 과정에 천착하며 아낌없이 박수 쳐주고.

나잇살에 뛰는 것도 예전같지 않다. 조금이라도 멀리 쳐야 겨우 1루에서 산다. 이제는 멀리치기 위해서 힘을 뺀다.

 

 

제 힘만 믿고

머리가 먼저 돌아가면 안 되지

한방 욕심이 앞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정작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물러나는

잠실야구장

 

어깨 힘을 빼고

나무 결대로

공을 끝까지 살펴야 멀리 날아가는 것이

어디 야구뿐일까

- 졸시 '잠실야구장' 全文

 

20년 전 멋 모르고 썼던 가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이한주 병점열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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