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확인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 확인

철노웹진

[거북이걸음] 지친 뱃사공을 위하여

  • 작성자철도노조
  • 등록일2018.03.19
  • 조회수592



철도노조 전임을 하고 있는 후배들이 15년의 긴 해고생활을 접고 복직한다. 후임자도 없이 조합 전임을 그만둬야 하는 형편인 후배들은 몹시 곤혹스러워 한다. 나는 후배들에게 뱃사공 이야기를 한다. 오래전 내가 퇴각할 때,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공 일을 한 노인이 있었다. 사공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후계자도 없었다. 날이 갈수록 노를 젓는 게 힘에 부쳤다. 하지만 후임자가 없으니 죽을동 살동 노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스님을 태웠다.

어르신, 참 딱하십니다.”

스님이 혀를 찼다. 비 맞은 중놈이 뭔 재수 없는 소리여? 스님을 쳐다봤다.

어르신, 강 이쪽에, 강 저쪽으로 건너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룻배가 한 척 있어요. 나룻배에는 노까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스님이 말했다.

그야, 나룻배를 타고 노를 저어 건너겠지요…….”

대답을 하다 보니 아차 싶었다. , 그렇구나……!

뱃사공은 강을 건너자마자 노를 나룻배에 놓고 총총히 사라졌다.

 

나는 마음 편하게 퇴각할 수 있었다.

전선을 이탈한 노동자계급의 적!”

30년 전 내가 퇴각할 때, 내 뒤통수에 퍼부어진 비난이다. 나는 그 비난을 인정했다.

그래 맞아. 하지만 누가, 죽을 때까지 운동 하는지 보자.”

마음속으론 인정하지 않았다.

 

꼭 운동일선에 있어야만 운동을 하는 게 아니다. 현 시기 노동조합운동이 무슨, 독립운동이나 혁명운동도 아니다. 그 긴 세월, 노동조합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힘이 되어준 가족 덕분이다. 내가 운동을 한 게 아니라, 내 가족이 함께 운동을 한 거란 이야기다. 고난의 시기를 함께 견뎌온 가족들을 기쁘게 하는 것도 운동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주 작은 힘들이 모여 커다란 힘이 돼야 가능한 것이다.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보태면 된다. 나는 노동조합 사무실 청소를 하는 것도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깨끗한 곳에서 동지들이 쾌적하게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게 보탬 아닌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과감히 나서는 것, 일선의 동지들에게 믿음의 눈길 한 번 던지는 것, 다독이며 막걸리라도 한 잔 받는 것,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몸을 쓸 수 있으면 몸으로, 돈을 쓸 수 있으면 돈으로, 글을 쓸 수 있으면 글로, 말 한 마디라도, 눈길 한 번이라도, 마음만이라도…….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내 마음은 그 작은 마음들 중 하나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다시 나아가야 할 때가 온다.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지 못하면 비겁하고,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서지 못하면 추하다. 나는 활동가의 진퇴를 그렇게 배웠다. 마음 편히 퇴각하시라.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면 된다. 때를 기다리며, 편히 쉬는 것도 운동이다.

 


 김명환  청량리역지부

댓글0

    비밀글 의견등록